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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태사공>송계공휘병식행장(松溪公諱秉植行狀)
松溪公諱秉植行狀 公諱秉植字永集號松溪貫玉川高麗光祿大夫門下侍中諱璋爲始祖入本朝吏曹判書諱淵以學行侍讀講筵自後冠冕繼世諱膺號伴鷗亭議政府舍人諱時南 贈通政大夫高祖諱斯明 贈通訓大夫曾祖諱永得祖諱漢俊考諱偵旭號竹圃以孝弟文學著世行翼陵叅奉兼中樞院議官妣淑夫人盆城裵氏高宗丁丑六月三日生公於紗巖本第生有異禀器宇軒昂志氣剛直孝於父母友於昆季敎子有方接人以和又好書籍晝宵手不釋卷築一書室而揭額曰松溪因而自號焉松者特立亭亭鬱鬱舍晩翠溪者靑山一曲潺潺長流不息以此追想公之意氣高貞清廉潔白世間之脱塵清趣不言可測也外部郎韓山李肯馥叙號記公壬寅二月十三日卒享年八十六一鄉章甫器葬于紗巖里鷲峰乾坐之墓前配晋州姜氏載馨女介庵公翼后癸丑三月十三日卒墓訪花洞東隨柳店北麓壬坐後配扶安金氏炳述女忠景公益福后丁酉三月二十一日卒墓紗巖堂底壬坐兩配淑德閨範宣配君子稱焉擧四男二女珍勳昌勳張炳錫姜氏出喆勳讓勳姜信植金氏出孫瑢翼長翼明翼寅翼權翼生奎曾玄煩不畵錄噫如公之明敏秀麗之姿學於富德於厚面遭時世亂未得展抱於致澤之階終老林泉面修身齊家孝先裕后爲務後裔振振繁昌盛哉休哉日長孫長翼侄暎勳堂侄大勳氏抱其家狀而遠訪鄙門曰吾先人之嘉言遺書想必多多焉挩近世路沉沉遺失無傳悲感無己懇請狀文於余余亦文拙固辭而感其誠謹撰次如右以竢日後秉筆君子云矣 檀紀四千參百拾參年庚申秋七月既望 海州 呉正洙 謹撰 송계공휘병식행장(松溪公諱秉植行狀) 공의 휘는 병식(秉植)이요, 자는 영집(永集)이며, 호는 송계(松溪)고 옥천 조씨인데 고려광록대부문하시중 휘장(璋)을 시조로 아조 이조판서 휘연(淵)은 학행으로써 경연(經筵)에 시독하고 그 뒤로 계승하야 홀과 인끈이 빛났으며 생휘응(應)은 태종(太宗)조에 문과에 올라 의종정부사인(議宗政府舍人)이요. 여러번 전하야 휘시남(時南)은 증통정대부였다. 고조 휘사명(斯明)은 증통훈대부요. 증조 휘는 영득(永得)이며, 조의 휘는 한준(漢俊)이고 고휘정욱(偵旭)의 호는 죽포(竹圃)요. 효우 문학으로써 세상에 유명하여 익릉(翼陵) 참봉겸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행직하고 비는 숙부인 분성배씨(盆城裵氏)였다. 一八七七(高宗丁丑)年 六月 三日 공이 사암 본가에서 출생하였는데 나면서 다른 기품이 있어 도량이 고결(高潔)하고 지기가 강직하야 부모께 효도하고 형제 우애하며 의리로써 자질을 가르치고 화기로 사람을 대하며 학문을 좋아하야 손에 책을 놓지않고 서실(書室)을 지어 송계(松溪)로 현판하고 인하여 스스로 호하였다. 소나무는 정정 특립하여 四시에 푸르고 시내는 청산한 구비로 잔잔히 길게 흘러 쉬지 않으니 이로써 생각하면 공의 고결한 의기와 담백한 정신이 세상에 초연함을 가히 안것도다. 외부랑 한산 이긍복(外部郎 韓山 李肯馥)이 호기를 지었다. 임인(壬寅) 二月 十三日에 향년 八十六세로 별세하니 향당사림이 만장을 써가지고와서 상여 줄을 잡으며 사암리 독수리 봉건좌원(紗岩里 鷲峯乾坐原)에 안장하고 배진주강씨 재형녀(晋州姜氏 載馨女)는 개암공익(介庵公翼)의 후손으로 계축(癸丑)年 三月 十三日에 졸하여 묘소는 방화동 동편수류점북록 임좌(訪花洞 東隨柳店北麓壬坐)며 계배는 부안김씨 병술녀(扶安金氏 炳述女)요 충경공 익복(忠景公 益福)후손으로 정유(丁酉)年 三月 二十一日 졸하야 묘소는 사암당저임좌(紗岩堂底壬坐)에 모셨다. 양배의 맑은 덕과 착한 법도가 군자의 좋은 짝이라 향방이 칭송하였다. 남 진훈(珍勳) 창훈(昌勳) 장병석(張炳錫) 처는 강씨출이요, 철훈(喆勳) 양훈(讓勳) 강신식(姜信植) 처는 김씨출이며 손자는 용익(瑢翼) 장익(長翼) 명익(明翼) 인익(寅翼) 권익(權翼) 생규(生奎)요 증현은 다 기록 아니한다. 아! 공의 명민하고 초탁한 자질로 학덕이 풍부한데 난세를 만나 치국안민(治國安民) 할 포부를 펴지 못하고 마침내 림천에 늙어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며 선영을 받들고 후손을 복되게 힘써 후손이 진진 번창하니 장하고 아름답다. 一日에 장손 장익(長翼) 족하 영훈(暎薰) 당질 대훈(大勳)이 그 가장(家狀)을 싸 가지고 멀리 나를 찾아와서 말하되 내선인의 아름다운 말과 미친 문자가 작지 않을 것인데 그간 풍속이 퇴폐하고 환란이 자저유실하고 전한 것이 없으니 밝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죄를 어찌 면하리요하며 내게 장문을 청하니 내가 문한이 없어 고사하다가 그 성의에 감동하여 삼가 우와갖이 가려써 후일 군자의 채택을 기다림. 甲申 七月 十六日 해주(海州) 오정수(呉正洙) 근찬(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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